KPI뉴스 - [기자의 눈] '필리핀 마약왕' 송환…가습기 살균제 참사 핵심 피의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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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필리핀 마약왕' 송환…가습기 살균제 참사 핵심 피의자는?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6-03-30 16:35:26
필리핀, 태도 바꿔 송환…'청와대 역할 컸다' 평가
'거라브 제인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주장 나와
옥시 전 대표…허위 광고, 유해성 은폐 관여 의혹
출국 후 소환 불응…대면 조사 거부하며 공개 활동
'정부, 거라브 제인 건 방치하는 것 아닌가' 지적도

'필리핀 마약왕'으로 불리는 박왕열이 지난 25일 국내로 전격 송환됐다. 박왕열은 2016년 필리핀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한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2022년 필리핀 당국에 검거·수감된 상태에서도 국내에 마약을 유통하는 등 문제를 계속 일으켰다.

그간 한국 측의 송환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던 필리핀의 태도를 바꾸는 데 청와대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이재명 대통령은 3일 필리핀 국빈 방문 때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에게 박왕열 임시 인도를 직접 요청했다. 그 후 필리핀 측과 실무 협의를 진행해 송환 승인을 받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 법무부 설명이다.

정부에서 '필리핀 마약왕' 송환을 위해 노력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 사안이 있다. 해외로 출국한 다른 주요 사건 피의자들에 대해서도 정부가 '필리핀 마약왕' 송환 노력에 못지않은 모습을 보였는가 하는 것이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이 2022년 8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거라브 제인 전 옥시 한국 사장 소환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와 관련해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례와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참사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단체 중 한 곳인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12일 성명서에서 이 대통령의 박왕열 송환 요청 사실을 언급하며, 거라브 제인에 대해서도 바로 그러한 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도 출신인 거라브 제인은 옥시(현 옥시레킷벤키저) 한국 법인에서 2006년부터 3년간 마케팅본부장, 2010년부터 2년간 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옥시가 출시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으로 인해 피해자가 양산되던 시기였다.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은 여러 가습기 살균제 가운데 가장 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제품이다.

피해 규모를 크게 키운 요소 중 하나는 '인체에 안전한 성분 사용' 등의 문구를 제품에 명시한 허위 광고였다. 거라브 제인은 옥시 마케팅본부장 시절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을 알면서도 '안전하다'는 허위 표시와 광고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대표일 때 옥시에 불리한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실험 결과 은폐·조작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대표적 가해 기업인 옥시 측 핵심 피의자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대면 조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거라브 제인은 2016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 해외로 출국했다. 검찰이 피의자로 소환하자, "바쁘다" 등의 이유를 대며 불응했다. 그해 국회의 국정 조사 자리에도, 2019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 규명 청문회' 증인으로 불렀을 때도 출석을 거부했다.

검찰이 2016년 인터폴을 통해 적색 수배를 했지만, 거라브 제인은 보란 듯이 해외에서 공개 활동을 이어갔다. 2022년에는 옥시 영국 본사의 인도 법인 대표로서 현지 방송에 출연해 '위생 안전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내에 전해졌다.

옥시 영국 본사가 거라브 제인을 명시적으로 감싸고 있음을 드러낸 대목 중 하나다. 그러는 동안 옥시 한국 법인은 2022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에서 제시한 조정안을 애경과 함께 거부해 피해자들을 다시금 분노하게 했다. 옥시와 애경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발생 규모에서 1, 2위 기업으로 지목된다.

거라브 제인의 대면 조사 거부로 또 다른 주요 피의자인 존 리가 2018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는 일도 발생했다. 존 리는 거라브 제인이 마케팅본부장일 때 옥시 대표였고, 옥시를 떠난 후에는 구글코리아 사장 등을 맡은 인물이다. 법원은 "직접 보고 관계"에 있었던 거라브 제인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존 리가 유죄라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거라브 제인에 대한 수사가 막힌 채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고통을 견뎌야 했다. 희생자도 계속 늘어났다. 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된 지 32년, 정부가 그 피해를 공식화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참사 피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단체 등에서는 정부와 검찰이 거라브 제인 문제에서 사실상 손을 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필리핀 마약왕' 송환 당일 이 대통령은 SNS를 통해 "대한국민을 해치는 자는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반드시 잡는다"고 밝혔다. 거라브 제인을 비롯한 다른 주요 사건의 해외 출국 피의자들에게도 적용돼야 할 원칙이다.

 

▲ 김덕련 기자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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