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AI 패권전쟁과 한국③] GPU·반도체 기껏 확보해도…전기 부족하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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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패권전쟁과 한국③] GPU·반도체 기껏 확보해도…전기 부족하면 끝

설석용 기자
기사승인 : 2026-06-18 11:24:55
데이터센터 한 곳당 100~300MW…어지간한 중소도시급 전력 소비
전력은 AI시대 필연적 병목…삼성도 12년 만에 에너지 사업 재시동
韓 전기 만드는 곳, 쓰는 곳 따로…생산 넉넉한데, 2조원 어치 허공에
1000兆 용인클러스터도 전력 인프라 우려…이 대통령 '지산지소' 강조

AI혁명이 글로벌 산업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본질은 패권전쟁이다. 누가 'AI의 두뇌'를 장악하고, 이를 가동할 하드웨어와 전력을 누가 선점하느냐의 싸움이다. 한국은 이 총성 없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반도체'를 공급하는 핵심 기지다. KPI뉴스는 창간 8주년 기획으로 6회에 걸쳐 AI 패권전쟁의 현주소를 짚고, 대한민국의 필승 카드를 모색한다.

당장 큰 돈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AI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다. 부지를 샀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그래픽처리장치)도 계약했다. 구하기 어렵다는 HBM(고대역폭메모리)도 납품 일정도 어찌어찌 잡았다. 그런데 전기를 끌어올 수가 없다. 전력망 연결 허가를 받으려면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황당하게 들리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 2015년부터 2030년까지의 글로벌 지역 전력 수요 성장 전망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 전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주요 선진국의 전력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에너지기구]

 

17일 미국 텍사스 전력신뢰성위원회(ERCOT)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233GW가 넘는 대용량 전력 수요가 연결 대기 중이다. 70% 이상이 데이터센터다. 건물은 2년이면 짓지만, 전기를 끌어오는 데 훨씬 긴 시간이 걸린다. 전기가 없으면 설비는 무용지물이다.

 

AI에 쓰일 반도체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호황을 맞아도 전기가 없다면 공장을 더 돌릴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000조 원 규모로 조성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이 문제는 최대 난제다. 필요한 전력이 당장의 인프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게 중론이다. AI 패권 전쟁에서 한국의 '반도체 공급자' 역할도 전력이라는 시험대에 올라 있는 셈이다.

 

AI 혁명이 시작된 이후 투자자들의 시선은 차례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오픈AI 같은 클라우드·AI 서비스 기업들이 주목받았다. 그다음은 엔비디아 같은 GPU 칩 설계 기업이었다. 이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전력 관련 기업들로 이동했다. AI 기술과 반도체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격화할수록 설비를 가동할 전력 경쟁도 함께 달아오르는 구조다. 

 

국내 주요 전력설비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일 년 새 폭등했다. 지난해 6월 17일과 전날의 종가를 비교해 보면 삼성전기는 약 15.5배(1454.7%), 가온전선은 약 5.3배(425.4%), 효성중공업은 약 5배(403.3%), LS일렉트릭은 약 4.5배(353.7%), 대한전선은 약 2.6배(160.4%), HD현대일렉트릭은 약 2.4배(138.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 국내 전력설비 관련 기업 주가 상승률. [장한별 기자]

 

이유는 단순하다. AI가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먹기 때문이다. 챗GPT에 질문을 던지거나 AI 이미지를 생성할 때마다 전기가 쓰인다. 글로벌 빅테크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한 곳의 전력 소비량은 100MW에서 300MW 이상이다. 인구 수십 만 도시가 사용하는 전력량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4년부터 2030년까지 2배 이상 증가해 945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의 연간 전력 소비량(약 950TWh)과 맞먹는 수치다.

 

AI 시대 '대운'을 만난 한국에서도 전력 이슈는 풀기 어려운 난제다. 한국은 전기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는 충분히 공급하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전력공사(KEPCO)의 '2025년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연간 총 발전량은 634.5TWh다.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한 전력량은 549.4TWh다. 전체 발전 설비 용량도 약 150GW로, 연간 최대 수요인 100GW를 크게 웃돈다. 그런데 한전경영연구원(KEMRI) 보고서를 보면 매년 20TWh의 전력이 쓰이지 못하고 버려진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조 원이 넘는 전기를 만들어놓고 버린다.

 

▲ 한국전력공사(KEPCO)가 조사한 '2025년 한국전력통계'. 우리나라의 연간 총 발전 전력량(생산량)은 총 판매 전력량(소비량)보다 많다. [장한별 기자]

   

전력을 만드는 곳과 쓰는 곳이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어서 생기는 일이다. 원자력발전소와 대형 화력발전소는 동해안과 남부 해안가에 몰려 있고, 태양광·해상풍력은 호남과 서해안에 집중돼 있다. 반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는 수도권에 70% 이상 집중돼 있다. 

 

전기를 만드는 곳에서 쓰는 곳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이어줄 송전망 구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산림 훼손, 전자파 우려, 땅값 하락을 우려한 반발이 크고 갈등으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 일례로 동해안-수도권 500kV 초고압직류(HVDC) 송전선로는 2019년 준공 목표였지만 아직까지 만들지 못했다. 강원도 주민 반발로 8년 이상 지연됐다. 

 

단순히 '양'을 확보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질'의 문제도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RE100을 선언했다. 자신들이 쓰는 전력을 2030년 전후로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약속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납품하는 한국 기업들도 이 기준을 맞춰야 한다.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로 생산한 부품은 사지 않겠다는 압박이 공급망 전체로 내려오는 구조다. 전력을 충분히 공급해도 그게 화석연료 기반이면 글로벌 공급망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전력량과 전력의 질이 문제가 동시에 걸려 있는 곳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최대 가동 시 필요한 전력은 최대 15GW. 원전 15기 분량이다. 수도권 전체 최대 수요(38~40GW)의 4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그 전기를 어디서 끌어오느냐가 문제인데, 동해안 원전에서 끌어오자니 송전탑 반발이 있고, 그렇다고 용인 인근에 원전을 지을 수도 없다.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 가지 방향은 소비처 근처에 발전소를 짓는 것이다. 소형모듈원전(SMR) 같은 방식이 거론된다. 기존 대형 원전의 10분의 1 이하 크기로, 냉각수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 해안가가 아닌 도심 인근이나 산업단지 내부에 건설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장 바로 옆에 배치하면 수백 킬로미터 송전탑을 세울 필요가 없다. 

 

다만 SMR이 대안이 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당장 시작해도 설계, 인허가, 준공을 거쳐 가동하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린다. 클러스터 가동 시점에 맞추기 어렵다.

 

다른 대안은 아예 발전소 근처에 산업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지산지소(地産地消·만든 곳에서 소비한다)' 개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AI 산업이라는 게 전기 먹는 하마다"라며 "자연스럽게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 바뀔 것이고, 송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지금처럼 수도권으로 다 모아서 쓰게 하는 방식은 안 된다. 전력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쓰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 대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보다 앞선 지난해 12월 'K-반도체 육성전략 보고회'에서는 "직설적으로 말하면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으로 눈길을 돌려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KPI뉴스 / 설석용 기자 ssyasd@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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