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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평범을 받아들인 사람이 누리는 가장 사적인 행복"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4-09-13 15:37:38
두번째 산문집 '가장 사적인 평범' 낸 소설가 부희령
자존을 바탕으로 평범함을 수용하는 이의 행복 설파
솔직한 화법으로 예리한 성찰 담아 흥미롭게 펼쳐내
"누군가 위대하다는 것은 만들어지는 판타지 같은 거"

'당신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사전적 해석으로 '평범'하다는 건 뛰어나지 않다는 의미이니, 사실이 그러할지언정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다는 이 말을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소설가 부희령의 산문집 '가장 사적인 평범'(교유서가)은 비범하게 해석한 평범으로 많은 평범한 이들을 위무한다.
 

▲새 산문집을 펴낸 소설가 부희령. 그는 "살다보면 평범은 비범과 대치되는 자리에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작가의 말을 대신해 서두에 길게 제시한 표제의 의미에 대해 부희령은 "훌륭하다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불행한 일이라고 여겼다"면서 "자신에 대해 비현실적 기대를 품은 탓에 오랜 시간 나답게 사는 게 얼마나 충만한 일인지 깨닫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어서 그는 "어느 순간 내가 굳이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뒤로는 물처럼 세상을 흘러다니다가 잠시 한자리에 고여 있고, 때가 되면 다시 다른 자리로 흘러가면서 살 수 있었다"면서 평범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평범하다는 것은 개성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밋밋한 삶을 가리키는 수식어로도 적절하지 않다. …평범하게 살아온 덕분에 더 많은 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많으니까.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좋았다.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서도, 좋았다. 살다보면 평범은 비범과 대치되는 자리에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_ '가장 사적인 평범'

일간지에 10여 년 동안 칼럼을 연재하면서 섬세한 사유가 깃든 필력을 보여준 그가 '무정 에세이'(2019) 이후 펴내는 두번째 산문집이다. '쓰기' '마음' '여행' '가족' '세상' '읽기' 등 5부로 나누어 다양한 생각들을 담았다. 솔직한 화법에 담은 사유가 예리하고 흥미롭다.

-'평범함이란 세상의 완충지대 같은 것'이라고 썼다.
"평범한 사람들은 약간은 '예비군' 같은 존재다. 그 사람들이 잘나지 못해서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 만약 어떤 리더의 기회가 오면 그 자리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사람들 사이를 채워주면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이들이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를 옮기고, 관계와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평범은 우월의 개념이 들어간 평균과도 다르다. 평등의 의미에 가깝고, 특별히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평범'은 '비범'과 대치되는 자리에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을 훌륭하다고, 비범하다고 생각하고 우러러보며 선망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 위대하다, 뛰어나다고 하는 건 바람 잡아서 만들어지는 거지, 똑똑하다고 선량하다고 위대한 건 아니다. 사실은 누군가 떠받들어주는 그 순간 위대해지는 거 아닌가. 그렇게 떠받들어진 사람도 다른 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우리랑 비슷한 사람이라는 게 그냥 드러나는 순간이 많다. 위대하다는 거는 만들어지는 판타지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여러 겹의 '공적인 자아'가 아니라 자신과 '한 겹으로 밀착한' 솔직한 자아가 누리는 '사적인' 평범을 지향한다는 건가.
"'사적'이라는 표현은 내가 굳이 다른 사람이 될 필요가 없는 나 자신을 의미한다. '사적인 평범'이라는 게 뭔가 초월한 개념 같아서 불가능하다는 조언도 들었는데, 완전히 가능하다기보다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자기 개성을 포기하지 않는 평범함이라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글쓰기 강의를 위해 파주에서 서울 나들이에 나선 그를 중구 정동 카페에서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적인 평범'이란 '자만심과 열등감 사이를 오가며 고통받지 말고 자존감을 바탕으로 평범함을 수용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평범하지만 다 같지는 않은, 나만의 평범을 누리자는 것이다.

도서관은 거짓말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다. 수백 개의 서가들, 그 속에 꽂혀 있는 수백 수천만 권의 책들, 책마다 넘쳐나는 깨알 같은 거짓말들. 사람들은 거짓말을 사랑한다. 거짓말은 지나치게 달콤하고 거짓말은 지나치게 아름답고 거짓말은 지나치게 말끔하고 거짓말은 지나치게 어렵고 거짓말은 지나침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뻔뻔해서, 모든 두꺼움이 그렇듯, 어리석음과 추함과 두려움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_ '천사'

-한동안 책을 멀리한 이유로 '타인의 목소리를 내 목소리로 착각하는 일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라고 썼다.
"책을 안 읽었으면 이렇게 공상가 같은 인간이 되지 않고 좀 현실적인 인간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이 나에게 너무 이상적인 가치를 많이 주입했다. 그런 가치가 주입돼 결국은 남들에게 이용당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책에서 말하는 가치를 습득하는 일은 어떤 지배 계급의 가치를 따라다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한 거다. 책이라는 게 참 기묘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한 것인데, 아무것도 안 하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뭔가 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말테의 수기'에서 인용한 '노래하라고 해서도 아니고, 그냥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지금 여기서 노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대목이 '쓰기'의 본질을 압축한다.
"결국 다다른 결론이 그거다. 쓸데가 있느니 없느니 이런 거 생각할 것 없이 페이스북에 열심히 글을 쓰는 것처럼 내가 좋아서 쓰는 거다. 그러니까, 아, 나는 쓰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이걸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이전에는 소설 안 쓰고 설렁탕집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한 적 있다. 언어라는 건 기호이고 상징이고 정신적인, 그냥 위안 같은 거에 불과하다는 느낌, 그런 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요즘은 그냥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사가 단단한 재미 있는 소설, 이런 거를 많이 쓰고 싶다. 생각이 변했다."

 

▲부희령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자유"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정치가나 기업의 CEO나 고위 관료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가나 기업의 CEO나 고위 관료의 시선으로 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개인조차 드론의 시각으로 타인을 보는 건 이상한 일이다. 화물연대 파업에 관한 뉴스에 달렸던 조롱의 댓글을 볼 때, 경제성장과 물가, 일자리를 걱정하며 전형적인 설명을 늘어놓는 이들을 볼 때, 세상에는 제자리와 상관없이 관리자의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꽤 많음을 깨닫는다. 세상 쓸데없다는 연예인들 걱정하는 일에 못지않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_ '드론의 시각'

-개인이 관리자처럼 '드론의 시각'으로 세상 일을 걱정한다는 시각이 흥미롭다. 칼럼을 쓸 때는 공적인 자아가 작동할 텐데, 힘들지 않았나.
"드론의 시각에 맞서 구체적인 개인들의 서사를 쓰는 일이야말로 소설가의 몫이다. 칼럼 쓰는 일은 나에게 선물 같은 것이었다. 산문이라는 것에 대한 새삼스러운 자각이 생겼고, 너무 도덕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한 자괴감도 있었지만 사회적인 이슈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관심 갖고 공부를 하게 된 좋은 계기였다."

-'윤리는 의무나 당위가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을 아름답게 하려는 노력'이라고 썼다.
"윤리적인 삶이란 법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된다는 행태와는 다른 것이다. 내 삶이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라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인간이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느냐고 비분강개하는 건 좀 말이 안된다. 인간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 않나. 내 삶이 아름답기를 바라거나 가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윤리적일 수 있다. 아름답게 살아보자."

부희령이 여행 산문에서 '평생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노력과 완전히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노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압박감'을 토로한 대목은 '평생 공동체의 한구석에서 옹색하게 살아온 어설픈 개인주의자의 고백'이라는 진술과 상통한다. 그는 칼럼을 쓸 때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평범하지 않은지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역설인데, 따지고 보면 부희령의 '평범'은 다양한 함의를 지닌 '이하의 파랑'이기도 하다.

나는 이하가 되고 싶었던 걸까, 파랑이 되고 싶었던 걸까, 이하의 파랑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초록? 이하의 파랑은 파랑 이하의 파랑이거나 파랑 이상의 파랑은 아니지만 초록 이상의 파랑이거나 초록 이하의 파랑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정체성은 푸른빛이다. _ '이하의 파랑'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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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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