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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내일의 시가 가득 담긴 술잔을 들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2-11-29 16:41:20
한-베 수교 30주년 기념 하노이 '한-베 문학심포지엄'
한국과 베트남에 번역된 작품들 돌아보며 미래 기약
'한-베문학평화연대' 베트남 당국 공식 조직으로 추진
2024년 대규모 한-베 문인대회, 문학상 제정도 제안
"한국 작가들의 폭발력을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 문학은 베트남 독자들의 마음속에 한국 문학예술의 독특한 아름다움,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 한국 작가의 작품에 담은 시대 사상 등으로 점점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수의 베트남 작가와 독자들은 말합니다. 한국 문학 작품을 읽을 때면 한국 민족의 영혼과 내면의 힘이 어떤지 느낄 수 있다고. 한국은 탄복해 마지않을 민족이며 미래를 향해 큰 폭발력을 가진 민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문학에 대해 저 역시 한국 작가들의 폭발력을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2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베 수교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응웬 꾸앙 티에우 베트남작가회 주석이 환영사를 낭독하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지난 2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베 수교 30주년 기념 '한-베 문학심포지엄' 모두에 베트남작가회 주석 응웬 꾸앙 티에우 시인이 한국에서 온 '한-베문학평화연대' 문인들을 향해 환대의 인사말을 전하자, 한국 일행을 대표한 소설가 방현석이 베트남 문인들에게 답사를 했다.

"오늘 이 자리는 바로 한국과 베트남의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번역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훌륭하게 모범적으로 수행해왔는지를 증명해주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베트남 작가 이름들은 이제 더 이상 전혀 낯선 이름이 아닙니다. 몇 작품들은 한국에서 문학 공부를 하는 청년들의 수업 시간에 등장하는 텍스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베트남 문학이 한국에 소개됨으로써 한국 사람들은 훨씬 정신적으로 큰 부자가 됐습니다."

이날 심포지엄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에 소개된 작품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는 자리였다. 한국에서는 작가 현기영 백시종 방현석 주찬옥 이대환 박지음, 시인 김태수 장석남 안현미 김근 김성규 등을 비롯한 15명이 참석했고 베트남에서는 티에우 주석과 바오 닌 등 작가회 회원 50여 명이 참여했다.

▲1990년대부터 베트남을 이해하는 한국 작가들을 이끌어온 소설가 방현석(오른쪽)이 베트남작가회 주석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날 "베트남작가회는 양국 작가들의 협력이 앞으로 더 큰 전환점을 이루어 양국의 작품이 더 많이 양국 국민의 정신 세계 속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란다"고 환영사를 이어간 응웬 꾸앙 티에우 주석은 환송 만찬 자리에서 "향후 '한-베문학평화연대'를 베트남 당국의 승인을 받아 공식적인 기구로 격상시키고, 2024년에는 한국 문인 50여명을 초청해 확장 심화된 교류를 이어나가겠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양국 작품들 중에서 수상작을 선정해 서로 번역 출간하는 일도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양국의 환영사와 답사에 이어진 기조발제에서 한국 원로 소설가 현기영은 "미국의 중학생들 중 상당수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을 미국의 동맹국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면서 "불행한 과거를 망각하는 자는 개인이든 사회든 간에 그 과거를 다시 반복할 운명이 되어 버린다"고 망각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작가는 전쟁에 대한 집단기억이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역할, 즉 망각에 저항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무심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작가는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인류에게 전쟁만큼 파국적인 위험이 없는데도 전쟁을 제대로 성찰하는 문학이 드물다는 것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작가는 지식인으로서의 작가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참혹한 경험들에 대해 발언해야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일 것입니다. 요컨대 작가는 편안하고 익숙한 글쓰기의 도식을 거부하고 일상의 논리를 깨뜨리면서 망각에 저항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문학 특집으로 전 지면을 할애한 베트남작가회 계간지 '쓰고 읽다' 2022 가을호(오른쪽)와 베트남어로 재출간된 방현석 소설 '랍스터를 먹는 시간' 표지. 

베트남작가회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쓰고 읽다' 2022년 가을호는 300여쪽 분량 전부를 한국문학 특집으로 꾸몄거니와,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관련 내용도 소개됐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베트남 한국문화원이 함께 기획한 이 잡지는 성석제·김연수·황정은·김애란·김초엽의 단편소설과 이재무·안도현·나희덕·이대흠·김영산·박성우·박소란의 시, 한국문학 평론과 논문, 방현석 인터뷰, 베트남 작가들의 한국 방문기 등으로 구성됐다.

베트남 소설가 옌 바는 이번 특집을 소개하는 발제문 '문이 열리다'에서 "한국의 김치 요리는 200가지가 넘지만 어떤 방식으로 만들든, 세계 어디에서 먹든, 그 톡 쏘는 매운 맛이 변함 없는 매력"이라며 "한국문학도 마찬가지여서 김치가 독특한 맛을 내듯, 한국 작가들이 판타지, 포스트모더니즘, 초현실주의 등 현대적 글쓰기 기법을 통해 세계로 나아갈 때 독자들도 한국문화 특유의 맛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날 심포지엄의 주제이기도 한 양국에 소개된 작품들에 대한 발제로 접어들었다. 한국에 본격적으로 베트남 현대문학을 알린 소설은 1960년대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에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생사를 건 투쟁을 감행하는 청년들의 학생운동을 다룬 소설 '사이공의 흰 옷'이었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중반 한국에 소개돼 당시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던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베트남 소설가 바오 닌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광주를 방문해 독자로부터 이 소설에 관한 질문을 받고 정작 자신은 이 작품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전쟁의 슬픔'의 베트남 소설가 바오 닌(왼쪽)이 자신의 집으로 한국에서 온 문인들을 초대한 가운데 제주 4·3의 비극을 처음으로 소설에 담아낸 한국 소설가 현기영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나는 그때까지 '사이공의 흰옷'을 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응웬 반 봉 작가가 그런 제목의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2020년이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사이공의 흰옷'을 손에 들게 되었다. 1972년 항미전쟁 시기에 출간(해방문예출판사)된 후, 40년 동안 한국에서 유명했던 응웬 반 봉의 소설이 째출판사에서 다시 처음으로 재출간되었다."

북베트남의 전사로 전쟁에 참여했던 바오 닌으로서는 남베트남 학생운동의 비사를 다룬 소설에 접할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정작 한국에 그 문학정신이 수혈돼 저항의 불씨를 지피는 데 기여했던 문학의 힘이 새삼스럽게 확인되는 자리였다.

이어진 김민정 중앙대 교수의 K-드라마 발제에서도 '저항의 역사'가 지닌 힘이 언급됐다. 김 교수는 "중심이 아닌 주변부가 세상을 구원하는 세계를 우리는 K-드라마의 안과 밖에서 함께 목격하고 있는 것"이라며 "전 세계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K'는 단순히 한국이란 나라가 아니라 한국 안에 내재한 저항의 역사, 즉 현실과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2022 한-베 문학심포지엄에 참석한 양국 문인들. 앞줄 오른쪽 네 번째부터 응웬 꾸앙 티에우 주석, 휴틴 전 주석, 현기영, 방현석, 바오 닌, 백시종.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베트남어로 출간된 방현석 단편소설집 '세월'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응웬 티 히엔 반랑대 교수는 "방현석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베트남의 '인간'이 처음으로 한국 문학 작품의 주인공으로 그려졌다"면서 "그의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베트남이 이야기의 주요 배경이 되었고, 처음으로 베트남의 배경이 한국의 배경과 동등하게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방현석은 1990년대 초반부터 베트남을 이해하는 젊은작가들 모임을 이어오며 베트남 관련 소설을 꾸준히 집필해왔다.

응엔 꾸앙 티에우 베트남작가회 주석은 베트남어로 재출간된 방현석 소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을 언급하며 마지막 날 환송 만찬에서 즉석 시를 지어 낭송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한국과 베트남의 비극을 딛고 연대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거니와, 티에우 주석은 "전쟁을 겪었던 지금 그곳은/ 벌판이고, 정원이다/ 파릇파릇한 어린이들이 자란다"면서 "오늘 저녁 우리는/ 랍스터를 먹지 않는다/ 기억이 가득 담긴/ 내일의 시가 가득 담긴/ 술잔을 든다"고 희망의 미래를 서원했다.

KPI뉴스 / 하노이=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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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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