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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사랑하는 어머니, 사과나무 아래 앉아보세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3-04-12 11:16:10
'어린 왕자' 작가의 저작 망라한 '생텍쥐페리의 문장들'
'남방 우편기' '인간의 대지'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등
발췌 편집해 생텍쥐페리 사유의 정수 안내하는 길잡이
"초록이 무성한 어머니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생텍쥐페리(1900~1944)는 유년기는 '하나의 국가'와 같았다고 썼다. 그는 어린시절 이후로는 제대로 살아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생텍쥐페리가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된 20세기의 고전 '어린 왕자'를 쓸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지만, 그가 유년의 세계에 갇혀서 살다간 작가는 아니었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 그는 "나는 하나의 국가와 같은 내 유년기에서 왔다"고 썼다. [마음산책 제공]

'어린' 소년이 등장하는 우화의 배경에는 생텍쥐페리가 하늘길에서, 전장에서, 사막에서 길어올린 그만의 깊은 사유가 스며 있다. '어린 왕자'를 넘어서서 그의 진면목을 포괄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길잡이로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신유진 엮고 옮김·마음산책)이 반가운 이유다.

생텍쥐페리는 26세에 민간항공회사에 들어가 비행기 조종석에 앉은 이래 44세에 마지막 정찰 비행에서 실종돼 사라지기까지 하늘에서 일하며 살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무한 세상에서 남는 건 자신뿐이고, 먼 발 아래 대지에 사는 인간들이 더 그리워질 터이다. 그가 유난히 '관계'에 집중하는 사고를 펼친 것도 이런 상공의 '고독'과 관련이 깊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가 아르헨티나로 첫 야간비행을 나섰을 때의 생각을 기록한 '인간의 대지' 한 대목은 이러한 그의 환경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벌판에 드문드문 뿌려진 빛만이 별처럼 반짝이던 어두운 밤이었다. 각각의 불빛은 암흑의 바다에서 기적처럼 깨어 있는 의식을 알렸다. 어느 집에서는 누군가 책을 읽고, 사색하고, 비밀을 좇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어쩌면 누군가 공간을 측정하고 안드로메다 성운을 계산하느라 지쳤을 것이다. …그러나 저 살아 있는 별들 중에 닫힌 창문이, 빛을 잃은 별들이, 잠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서로 만나려고 해야 한다. 저 멀리 들판에서 타오르는 불빛들 중 하나와 소통하려 해야 한다.

밤하늘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들판의 불빛, 각자 별처럼 빛나지만 그 별들은 서로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토록 다감하고 정겨운 그 별들이 지상에서는 싸우고 반목하고 상처를 주며 하늘에서보다 더 고독하게 존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생텍쥐페리가 간절하게 기도하듯 써내려간 지상의 별들을 향한 바람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생텍쥐페리의 작품들에 밑줄을 긋고 따로 옮겨 엮어낸 파리8대학 출신 작가이자 번역가인 신유진은 "오랜 비행 생활로 겪었던 잦은 이별과 고립, 하늘을 날며 어디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불안은 그를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끌었다"고 서문에 썼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는' 흥미로운 관계의 배경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도 등장한다. 그는 일찍이 홀로 '쥐비곶' 비행 책임자로 외롭게 지낼 때 카멜레온 길들이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전했다.

카멜레온 한 마리를 길들였습니다. 이곳에서 제 역할은 길들이는 것이지요. 저와 잘 맞는 일입니다. 길들인다는 것은 참 예쁜 말이지요. 저의 카멜레온은 고대 동물을 닮았습니다. 디플로도쿠스 공룡과 비슷해요. 몸짓이 놀랍도록 느리고요, 거의 인간처럼 조심성이 많으며, 끝없는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몇 시간이고 꼼짝도 하지 않죠. 태고의 밤에서 온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우리 둘 다 꿈을 꾸지요.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은 "너는 나에게 있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배경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어머니는 무한한 품이었다. 그는 "저에게 무한함을 가르쳐준 것은 은하수도, 비행도, 바다도 아닌 어머니 방에 있던 보조 침대였다"고 어머니에게 썼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머니 옆 그 보조침대에서 자는 '놀라운 행운'을 누릴 수 있었노라고.

생텍쥐페리 사후 유작으로 출간된 '성채'는 그의 작품세계를 총괄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남방우편기' '인간의 대지' '야간비행' '어린왕자' 들은 모두 이 작품을 위해 바쳐진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불행하게도 이 작품은 그의 손으로 완결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미완성인 셈이다. 그는 '성채'에서 '사랑'과 '평화'에 방점을 찍어 후대에게 하늘에서의 사색을 전한다.

한 사람의 고통은 세계의 고통만큼 가치 있다. 한 사람의 사랑은 그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은하수와 별들을 흔들리게 한다. 나는 배가 물 위에 그리는 곡선처럼 부드럽게 당신을 내 품에 안는다. 그렇게 사랑을 짊어진 이 강한 어깨는 배가 되어 먼바다를 향해 출범한다.

▲밤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상의 별들은 서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테쥐페리는 기도처럼 썼다. [마음산책 제공]

평화는 전쟁을 통과해 이르는 상태가 아니다. 내가 평화란 무력으로 정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무기를 내려놓았을 때 나는 죽게 될 것이다. 평화란 내가 평화를 구축할 때만 이뤄지는 것이니까. 말하자면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흡수한다면, 내 왕국에서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바람을 표현하는 방식을 찾는다면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의 모습이란 어쩌면 각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으니까.

한 사람의 고통은 세계의 고통만큼 가치가 있다는 언설은 새삼스럽지만 깊고 따스한 위로다. 사랑을 짊어진 강한 어깨로 미끄러지듯 먼바다로 출항하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평화를 지향한다. 그는 "평화는 성장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무"라면서 "내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빛이 필요하다"고 '성채'에 썼다. 그에게 평화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누리는 사랑이기도 하다. 우리네 싱어송라이터 송창식이 '담배가게 아가씨'를 불렀는데, 생텍쥐페리와 어떤 교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는 '젊은이의 편지'에서 송창식과 비슷한 느낌을 전달한다.

비행을 하고 일요일 내내 잠만 잤습니다. 성냥과 담배와 우표를 사면서 하루를 보냈고요. 이 동네의 담배가게 아가씨가 아주 예쁩니다. 내 방에는 이미 성냥갑 30개와 40년 동안 쓸 우표가 있지요. 8일 동안 했던 사랑의 우울한 결과입니다. 아주 매력적인 담배 가게 아가씨이지요. 계산대가 마치 왕좌라도 된 것처럼 아름다워요. 그 가게에만 가면 그녀와 내가 서로 너무 멀어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고 또 내가 무척 작게 느껴집니다.

지상 10미터 높이에서 시속 530킬로미터 속도로 날면서 적의 위치를 간파하라는 무모한 명령을 수행하며 매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였던 그는 '전시 조종사'에 "나는 죽음이 아니라 바로 다음 이어질 순간을 위해 산다"면서 "나는 매초 부활한다"고 썼다. 

▲1944년 정찰 비행 임무를 띠고 이륙한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별로 떠났다. [마음산책 제공]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기쁨 속에서 환희를 뒤쫓으며 산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경이로운 쾌락을 맛보기 시작한다…. 매초 내게 생이 주어지는 것 같다. 매초 내 삶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산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언제나 살아 있다. 나는 생명의 원천일 뿐이다. 살아 있다는 도취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사람들은 '전투에 대한 도취감'이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생에 대한 도취감이다. 저 아래에서 우리를 겨냥하고 있는 적들은 그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단련시켜 주고 있다는 것을 알까?

그렇게 매초 다시 태어나면서 단련된 그는 "겸손이란 자신을 스스로 비방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행동의 원칙이기도 하다"고 썼다. 그는 나아가 "자기 죄를 스스로 사하기 위해 자신의 불행을 숙명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숙명에 굴복하는 것"이며 "그러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진다면, 그것은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생텍쥐페리는 죽음이라는 도착점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어느 방향을 설정해서 종점에 이를지는 자신이 설정하기 나름이며, 그것이야말로 생의 중요 조건이라는 행동주의적 신념을 지닌 작가였다.

생텍쥐페리가 실종되고 난 후에도 의연하게 버티던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는 1년 후에 자신에게 전해진 아들의 마지막 편지를 받고 오열했다. 그녀는 아들이 마지막 비행을 할 때 고향 마을 위를 선회하던 비행기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고 믿었다. 10년이 흐른 후 어머니는 아들이 평생 자신에게 보내온 편지 100여 통을 책으로 묶어냈다. 어머니의 초록 나라에 무사히 착륙했기를.

어떻게 지내십니까.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긴 겨울은 너무도 슬픕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꽃이 핀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보세요. 프랑스에는 꽃이 피었다고 하니까요. 저를 대신해서 주변을 살펴보세요. 초록이 무성한 어머니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_'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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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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