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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모래 케이크 같은 세상에 불어오는 바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3-07-25 22:53:57
등단 10년만에 첫 소설집 '머문 자리' 펴낸 김산아
청·장년기 헌신적으로 살았던 중산층 소시민 현주소
소통 부재, 욕망의 밑바닥 들여다보는 촘촘한 서사
"언젠가 무너질지라도 끝까지 지켜내는 태도의 삶"
잘 살고 싶지 않은 생명이 있을까.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정의는 천차만별일 터이지만,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욕망과 회한과 갈증이 그 혹은 그녀를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김산아의 첫 소설집 '머문 자리'(솔)는 헌신적으로 청춘기를 통과해온 중산층 소시민의 자전적 고백이자 위태로운 세상에 대한 문학적 구축이다. 삶의 나침반도 잊고 그냥 밀리는대로 흘러가는 이들의 현재 위치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첫 소설집을 펴낸 김산아. 그는 "잊거나,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인정하기 싫어 외면해도 각자의 자리를 지켰던 무게들을 이 책에 담았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꽃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돌아보지 않는 아이가 있다. 일찍 등원해서 엄마가 올 때까지 가장 늦게 남아 있는 그 아이 '서연'은 홀로 창 밖을 바라보며 무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이름을 부르면 응답이 없다. 아이는 말한다. '나는 꽃이에요. 꽃은 물과 햇빛과 흙을 먹어요. 지금 햇빛을 먹고 있으니까, 물을 주세요.' 이 아이가 유일하게 곁을 내준 '윤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서연을 놀리지 않고 '꽃'으로 받아들였으며 서로 토닥토닥 모래로 케이크를 만들었다. 김산아는 '모래 케이크'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를 그 케이크의 본질을 직시하면서 허무나 비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묵묵히 지켜본다.

"너는 서연이잖아, 왜 자꾸 꽃이라 불러달라고 해, 이런 의문들 이전에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다음 단계가 와요. 하염없이 꽃이 꽃이게 두려면 모래 케이크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처럼, 아주 집중해서 성심을 다해 계속 꽃으로 봐줘야 해요. 조금만 마음을 내려놓고 시선을 돌리면 금방 꽃이 서연으로 바뀌어요. 저는 제 삶에서 모래 케이크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나 봐요."

'문학의 오늘' 신인상(2013)으로 문단에 나온 이래 10년 만에 묶어낸 첫 소설집은 '바람 예보'로 시작한다.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서 생활용품 소매점을 운영하던 부부가 변두리로 쫓겨나가는 이야기이다. '바람'이라는 모티프를 매개로 바람의 소용돌이 중심을 향해 운명과 맞서듯 걸어가는 아내인 '나'의 시선과 태도가 서사시처럼 흘러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이 바뀌듯, 비가 내리고 날이 개듯, 바람이 불고 잠잠해지듯 순리를 따르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 흐름에 나를 맡기고 흘러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젠 꼭 지켜야 할 마지막마저 놓아버린 느낌이었다. 위로를 받고 싶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의 잘못도, 그녀의 잘못도 아니야. 누군가 감싸 안고 등을 두드리며 해주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커튼을 들추고 창밖을 보았다. 숲속나무들이 바람에 휩쓸려 사방으로 출렁였다. 잎사귀를 휘날리며 흔들리는 가지가 손짓했다. 나오라고, 가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변에 깔린 분위기는 도저한 비감과 허무이지만, 바람은 이런 감정들마저 희석시키고 감싸서 어디론가 날려보내는 기묘한 역할을 수행한다. 김산아는 그것이 '위로'라고 했다. 주식을 하다가 망한 듯한 남편은 칩거한 상태로 식물처럼 살아가고, 아내는 그네들의 삶터를 앗아간 대형마트에 계산원으로 취직해 밤을 새워 졸음과 환영을 극복하며 일을 하다 바람 속에 집을 오간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변두리 인생으로 등장하고 꽃을 머리에 꽂은 여인이 따스한 돌멩이를 건네주기도 한다. 이 모든 풍경의 끝에 바람이 분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멀리 회오리가 일었다. 바람의 중심, 그 고요한 한가운데를 향해 다가갔다.'

▲김산아는 "현실은 단지 깔끔하게 포장됐을 뿐, 피가 튀는 공포영화보다 더 우월하진 않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굳이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위로지요. 여기 현실 안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에 부닥친 사람도 위안이 되는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바람이 떠남의 의미로도 다가오지만 저는 위로를 생각하고 있어요. 바람 자체가 위로라면, 그 중심에는 정착할 곳이 있겠죠?"

바람을 피하지 않고 맞서며 그 바람의 중심에서 삶의 동력을 찾는 태도가 범상치 않다. 김산아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졸업 뒤에는 노점상과 철거민 당사자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전국빈민연합'에서 10여년 동안 상근자로 활동해왔다. 마흔에 이르러 뒤늦게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뒤 돌아갈 것을 기약하고 그만둔 현장에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세월이 벌써 5년이 넘었고, 돌아가지 못하고 중산층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돌아보는 자전적 단편 '머문 자리'를 썼다. 최소한 어정쩡한 자신의 현주소를 직시하는 것마저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소설을 써나갈 수 없으리라는 의지에서였다.

강북의 낡은 저가 아파트에 살다가 집값과 주식이 폭등하면서 강남으로 이사해 그곳 사람들과 접촉하며 생활하지만 서걱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살아온 근간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강남 중산층 정서에 적응해나간다. 강남 아파트에서 '차별에 저항하라'는 글씨가 보이는 재활용품 박스를 앞에 두고 '창피도 자랑스러움도 민망도 당당함도 아닌'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는 소설 속 화자는 작가의 정확한 분신이다.민중가요 작사자의 투병 모금에 얼마를 내야할지 고민하다 액수를 놓고 고민하는 대목은 지난 시절을 관통해온 많은 이들의 민낯을 뜨겁게 만든다.

"다른 사람이고 싶었지만 딱 그만큼의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런 자기가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는 이야기죠. 그거로라도 자기가 조금 나은 사람이길 바라는 도덕적인 속물인 셈인데, 저 자신의 현재 삶을 직시하지 않으면 제가 하는 모든 행위가 거짓 같아서, 그 이유로 소설을 못 쓸 것 같아서 정말 저를 까발리는 심정으로 썼어요."

'포클레인'은 소통의 어려움과 욕망의 근원을 섬세하게 교직해낸 단편이다. 활화산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 시원과 세혁 부부. 시원은 오동나무를 쓰러뜨리고 뿌리를 잘라내며 꽃을 짓뭉개는 포클레인을 보며 자신도 그런 포클레인을 갖고 싶다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화산 여행 내내 시원과 세혁의 불통은 세세하게 음각되고, 시원은 화산 곁에서 낯선 남자와 동물처럼 엉켜든다. 포클레인을 갖고 싶다는 시원의 욕망에 대해서는 본인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포클레인이 갖고 싶어. 구덩이를 파는 진짜 포클레인 말이야 아주 깊고 큰 구덩이를 팔 거야. 깊은 그 속엔 마그마가, 암모나이트가, 삼엽충이 있을지도 몰라.'

▲노점상·철거민들 단체에서 활동가로 살았던 김산아는 "소설이 교조적으로 흐를까봐 늘 고민했는데 묶어놓고 보니 걱정을 던 것 같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등단작인 '삐삐의 상자'의 화자 내면에도 깊숙이 두려움과 욕망이 중첩돼 있다. 임신한 상태인 '나'는 피가 흐르고 장기를 적출하며 살을 파내는 잔혹한 하드고어물에 중독돼 있지만, 정작 돼지고기에서 흐른 피에는 질색을 한다. 유정란 부화기를 선물로 받아 시험 삼아 부화시킨 병아리 '삐삐'를 어찌하지 못하고 베란다 종이 상자에 키우는 과정을 병치시키며 피만 보이지 않게 포장했을 뿐 공포물의 잔혹한 영상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의 진상을 핍진하게 음각해 나간다.

'공존'에서 보여주는 소통이 왜곡되고 단절된 부부의 비극은 안타깝다. '수많은 오해와 자기 합리화'의 덫에 걸려 가장 가까운 관계임에도 소외가 중첩돼 끝내 스스로 생과도 이별하는 이야기는 위로의 바람이 아니라 저 세상에서 불어오는 쓸쓸한 바람의 서다. 이밖에도 캠핑을 가서도 자본주의의 관성과 속물들의 맨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오늘도 캠핑'이나 성장기 소녀의 키를 재던 음습하고 잔인한 손길을 단절된 소통을 매개로 전개하는 '다섯 뼘에서 멈춘 이야기'가 이번 소설집의 단편 목록들이다.

최근 다시 구속된 '머문 자리'의 실제 인물 면회를 앞두고 있다는 김산아는 "언젠가 현장에서 만난 사람과 사연들을 소설로 쓰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너무 주제넘게 느껴진다"면서 "제 소설이 교조적으로 보일까봐 쓰는 내내 고민했고 두려웠지만 소설집을 묶어놓고 보니 다행히 계속 써도 될 것 같은 힘을 얻는다"고 맺었다. 모래 케이크 같은 세상, 소설 속 아이들의 말.

-선생님, 우리 물 뜨러 가요, 케이크 무너지지 않게 지켜 주세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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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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