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데스크시각] '1500명' vs '0명'…고집불통이 야기하는 '의료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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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1500명' vs '0명'…고집불통이 야기하는 '의료 공백'

안재성 기자
기사승인 : 2024-06-13 16:32:29
서로 자기 주장만 반복할 뿐 대화·타협 없어
'의료 공백' 피해는 온전히 환자들에게만

자녀 조기 유학 목적이나 주재원 파견 등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장점 중 하나로 '의료 시스템'을 반드시 꼽는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미래를 비관해 해외로 이민 간 사람들도 의료만큼은 훌륭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려고 기웃거린다.

 

그만큼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선진국 중에서도 보기 드물 만큼 우수하다. 가격이 저렴하면서 의료 접근성도 뛰어나다. 이 두 가지 장점을 겸비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은 의료비가 매우 비싸 어지간한 질병으로는 병원을 방문할 엄두도 안 난다. 감기만 걸려도 근처 병원을 찾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캐나다와 호주는 의료가 무상이지만 접근성이 나쁘다. 평소에는 '패밀리 닥터'라 불리는, 한국식으로는 일반의(GP)에 해당하는 의사들만 만날 수 있을 뿐, 전문의 만나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수술 한 번 하려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오죽하면 "중병에 걸리면 미국에서는 돈이 없어서 죽고 캐나다에서는 기다리다가 죽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면서 의사들도 큰 돈을 벌고 있다. 의사들은 수입을 연봉이 아니라 월급 기준으로, 세전이 아니라 세후 기준으로 이야기한다. 의사들 사이에서 '넷 2000'이라고 하면 세후 월급 2000만 원을 뜻한다. 연봉으로는 약 4억 원에 해당한다.

 

그런데 의사들 사이에서 세후 월급 2000만 원은 별로 많이 버는 수준이 아니다. 평균 이하로 취급받는다. 세후 월급 1000만 원은 연봉으로는 약 1억5000만 원 수준인데 의사들은 "쥐꼬리밖에 못 버네"라고 경멸한다.

 

연봉 1억5000만 원은 대기업에 입사해 20여 년 간 열심히 일해서 부장급은 돼야 기대할 만한 수준이다. 그 돈이 의사들에겐 '쥐꼬리'인 것이다. "입시생 중 1등부터 3000등까지는 전부 다 의과대학으로 간다"고 이야기될 만큼 의사의 인기는 높다.

 

어떻게 이런 시스템이 가능할까. 이는 정부가 의료행위 하나하나의 수가는 낮게 책정하면서 동시에 의대 정원도 26년 간 동결해 경쟁을 완화시켜줬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경쟁률이 낮은 것을 활용해 보다 많은 환자들을 상대함으로써 수입을 늘렸다. 덕분에 의료 접근성은 매우 높아졌다.

 

단점이 없는 건 아니나 세계적으로도 우수하다고 할 만한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최근 정부와 의사가 의대 증원을 놓고 극한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위기에 처했다.

 

이미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4개월째 이탈하면서 대학병원의 진료 기능은 크게 저하됐다. 그나마 대학병원을 지탱하던 교수들도 이제는 손을 놓는 모습이다.

 

의사협회는 오는 18일 모든 의사들이 동참하는 총파업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더해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이 차례차례 무기한 휴진을 결의 중이다.

 

서울의대 교수들은 오는 17일부터, 연세의대 교수들은 오는 27일부터 각각 무기한 휴진을 예고했다. 가톨릭의대와 울산의대 교수들도 무기한 휴진을 검토 중이다. 자칫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들이 줄줄이 진료를 멈출 수 있는 위기다.

 

심각한 의료 공백을 야기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확실한 건 정부와 의사 모두 자기 고집만 내세우면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대학 입학전형에서 의대 정원을 4610명으로 정했다. 종전(3058명)보다 1497명 급증한 규모다.

 

의료 공백을 우려한 사회 각계에서 '점진적인 증원'을 권하지만 정부는 고집불통이다. 단번에 1500명을 늘리겠다는 정부 안을 의사들이 받아들일 리 없다.

 

의협도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도 오직 "원점 재검토"만 외치고 있다. 어느 정도 증원을 수용했다면 정부도 출구 전략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나 '0명'을 받아들일 리는 없다.

 

그 사이 환자들만 고통을 겪고 있다. 비록 빅5 병원 교수들이 응급실과 중환자실 진료는 유지하겠다고 하나 암환자 등 장기 진료와 추적 관찰이 필수인 환자들은 의료 공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가 췌장암 환자 28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의·정 갈등으로 진료 거부를 겪은 응답자는 67%, 항암 치료가 연기된 경우는 51%에 달했다. 진료 거부로 사망한 환자까지 있다고 한다.

 

정부와 의사가 '1500명' vs '0명'만을 고집하며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형국이다.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일컬어지는 의료 시스템이 무너진다면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정부와 의사는 이 책임을 어떻게 지려는 걸까.

 

▲ 안재성 경제산업 에디터.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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