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화가 정정식 "딸기가 폭발해 우주가 생겼는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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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정정식 "딸기가 폭발해 우주가 생겼는지 누가 아는가"

제이슨 임 문화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2-12-07 21:38:14
[인터뷰] '우주의 순환'을 그리다…"결국 모든 것은 하나"
한국인 국제 문화 네트워트 묶으려 십 수년 동분서주
비채아트뮤지엄서 12월7일~15일 개인전 'Silent Life'
▲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화가 정정식. [이상훈 선임기자] 

"딸기가 폭발해 우주가 생겼는지 누가 아는가." 화가 정정식이 던진 뚱딴지같은 우주론이다.

웃자고 던진 이야기일 테지만 그의 그림엔 우주와 여러 과일, 특히 딸기가 자주 등장한다. 전시관을 두어 바퀴 둘러보자 주연인 듯 조연인 듯 캔버스에 그려진 우주와 과일들은 영겁의 시간을 넘어 하나로 묶이는 듯했다.

그는 물리학자인양 양자역학부터 빅뱅우주론을 거쳐 다중우주론까지 낯선 이야기들을 연이어 꺼내놓았다. 그의 우주론은 "시간의 짧고 긴 것을 모두 걷으면 결국 모든 것은 순환의 고리로 연결돼 있고 모든 것은 사실 하나일 수 있다"라는 게 핵심 논리다. 결론은 결국 '모든 것은 하나'라는 얘긴데 사실 그는 진즉부터 기자에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던 셈이다.

그의 이야기는 장자의 '호접춘몽(胡蝶春夢), 莊周之夢(장주지몽)'과 궤를 같이한다. '꿈속에 나비가 됐다가 꿈에서 깨니 내가 꿈을 꿔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꿔 내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다. 그의 작품들은 장자의 호접몽처럼 결국 '모든 물아는 서로 구별할 수 없는 하나일 수 있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한 것들이다.

문득 하필이면 과일인지 궁금했다. "화두 자체가 쉽지 않은데 사람마저 끼어들면 주제 자체가 너무 무거워진다. 과일은 씨앗 하나로도 순환 원리를 설명하기 쉬우니 좋은 재료다."

그는 10여 년 붓을 놓고 산 적이 있다. 오지랖인지 열정인지 한 신부와의 인연으로 시작한 '한민족미술교류협회'를 위해서다. 

"한국인은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어떤 이는 애니깽으로 팔려 태평양을 건넜고 멕시코나 쿠바에 뿌리를 내려야 했다. 문화는 국경도 없다. 문화영토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흩어진 한국인의 국제 문화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세계 19개국에 뛰어다녔다. 나중에 예술의전당에서 함께 전시를 열며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그는 십수 년째 단체의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 정정식 화가 [이상훈 선임기자] 

그러던 그가 다시 붓을 손에 든 것은 가슴에 꽉 찬 화두를 캔버스에 펼치기 위해서다. 어느 날 한 초등학교의 연못에서 본 금붕어는 그에게 잊힌 작가정신을 번뜩이게 했다. '인간도 저 금붕어 같지 않을까. 저 금붕어처럼 우리도 지구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찰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이내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라는 새로운 화두로 옮겨갔다. 그는 결국 '모든 객체는 우주의 순환고리로 연결됐고 모두가 하나다'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붓을 쥐고 캔버스 앞에 서고 싶은, 화가로서의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청년 시절엔 사회고발을 주제로 한 작품을 여럿 그렸어요. 누드는 수단 중 하나였죠. 40대에 들어선 생계형 화가로 활동했어요. 정물화든 풍경화든 뭐든 닥치는 대로 그렸죠. 그리는 대로 팔리니 신기할 따름이었죠."

다시 붓을 쥐자 그는 엄습한 화두들을 토해내려 하루를 열흘처럼 때론 열흘을 하루처럼 보내야 했다. 밀린 숙제를 하듯 그는 수십 점의 작품을 그렇게 세상에 뿜어내기 시작했다.

철학자인 듯 물리학자인 듯 여러 주제를 진중하게 넘나들던 그는 "보는 사람이 즐거우면 그만이다"며 한층 달아오른 열기에 김을 뺀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관객이 쉽게 작품을 접하고 스스로 해석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주제가 무겁고 어려우면 관객에겐 부담이죠. 하지만 언젠가 제 그림이 관객들에게 인식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과일 대신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어요. 무거운 주제가 될 수 있지만 교만한 인류에 경종도 울리고 싶어요. 사실 사람만큼 복잡하고 무거운 주제도 없으니까요." 그의 그림은 결국 삼라만상 희노애락을 집대성한 인간 군상을 향하고 있었다.

▲ 정정식 작가의 'cycle-Extinction, Birth', oil on canvas, 2022,  60 x 120cm. [비채아트뮤지엄 제공]

그는 그것을 표현할 방법은 뭐든 상관없다는 생각도 전했다.

한 중학교 미술부 선생님은 재능있는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나중에 아이는 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과에서 수학하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화가라는 이름표를 단 정정식은 우림갤러리, 가나인사아트센터 등 국내 유명 갤러리와 협업하며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자신의 화풍을 알려왔다.

활동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미국 '2012 Art Miami' 아트페어 독립부스전 개인전을 열었고 특히 스위스 'ART INTERNATIONAL ZURICH 2012'에선 메인화면 작가로 선정돼 한국미술의 위상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한국인 세계문화네트워크 연결은 이제 힘 있는 이들이 이어갔으면 좋겠다"며 자신은 이제 오롯이 화가로서의 길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화가 정정식의 개인전은 현재 서울 서초구 방배동 '비채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명은 'Silent Life'로 오는 15일까지 이어진다. 주요 전시 작품은 초현실주의적 수박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모색하는 '수박-삼각관계'와 '전망대', 생성과 순환의 의미를 보여주는 '4번째 탄생'과 '순환', '순환Ⅱ' '순환Ⅲ' 등 그의 우주론이 집대성된 작품들이다. 

인터뷰는 7일 오후 비채아트뮤지엄 전시관에서 진행됐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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